저는 가끔 ‘내게 순교해야 할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한 상상을 해보고는 합니다. 수 많은 믿음의 순교자들처럼 그렇게 ‘나도 순교를 영광으로 여기며, 그 때를 맞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들입니다. 단언컨대 목사로 순교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에 나타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처절한 반응에 대해 장담할 수 없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 주님은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 주님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시는 분이셨다는 말입니다. 홀로 한적한 곳에 있으실 때 몰려든 무리들을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셨다(마 14:13-14)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을 내세우기 위해 어린아이를 박대했을 때, 누구든지 어린 아이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제자들을 꾸짖기도(막 10:16) 하신 것을 보면, ‘화’를 내시기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슴이 메어지고 ‘통분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마 26:38). 반면,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기뻐하기도’(눅 10:21)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기쁨도, 슬픔도, 분냄도, 아픔도 느끼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깊이 연관지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사람들의 조롱과 빈정거림, 멸시와 천대를 능히 이기실 수 있는 분이실 것이라는 가정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바르게 묵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선입견이고, 주님에 대한 그릇된 인식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사건 앞에 처절한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잔을 옮겨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신의 위치에서 당하신 고난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 몸을 입으신 채로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고난이셨습니다. 신이시기에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과 고통을,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신 채로, 그대로 맞이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을 묵상하는 계절입니다. 우리 주님이 당하신 그 진정한 고난을 진심으로 묵상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일에 일점이라도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