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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어제 세례 문답을 하는 중에 오늘 세례를 받는 형제, 자매에게 들은 확답이 있습니다. ‘세례는 이전의 내가 죽고, 새 사람이 되어 사는 것에 대한 확증’이라는 부분입니다. ‘새 사람’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세상 가운데 거하지만 모양만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새롭게 태어나 살아가는 ‘새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조금 막연할 지 모르겠습니다. 로마서 6장 6절과 8절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이제는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표현대로 ‘예수로 사는 사람’을 정의해 본다면, ‘죄에게 종 노릇하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종 노릇하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14:23). 그러니까, 다수의 사람들이 옳게 여기는 일이라도 그것이 믿음(말씀)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죄일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 문제가 그렇고, ‘종교다원주의’ 등이 그렇습니다.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믿음에 옳지 않는 일이라면, 그것은 결단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릇된 모양(죄)은, 자꾸 우리로 그들의 종이 될 것을 요구합니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일에 우리가 동의하기를 바라기를 넘어, 이제는 세상의 법으로 자꾸 우리를 옭아 매려 들기까지 합니다. 종교 간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대화하고, 화친하기를 원하는 일은 이제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까지 모호해 지도록 우리를 유도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세례를 받는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죄에게 종 노릇하는 모양’은 이제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이들을 향해 도전해 올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로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고, 미련한 모양인 것처럼 속이려고 들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세상으로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들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 함께 간절히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이들이 고백한 ‘이전의 나는 죽고, 이제는 새 사람의 삶을 살겠다’는 고백이, 이들 믿음의 삶을 반드시 승리함으로 이끌 수 있는 소중한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