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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노엽게 하라

어릴 적 친구가 일제 샤프를 학교에 가지고 와서 자랑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일본에 업무 차 다녀오시면서 선물로 사 오신 샤프였습니다. 제 기억엔 모양도 깔끔하고 성능도 아주 좋은 검정색의 샤프였습니다. 친한 친구였는데, 얼마나 제게 자랑을 하던지 너무도 약이 올라 결국 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떼를 쓰고야 말았습니다. 형편이 넉넉치 않았음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게 그런 샤프가 필요할 리 만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들이 듣기 싫은 소리로 떼를 쓰니 결국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렇게 그 일제 샤프가 갖고 싶으면, 네 친구 아빠를 네 아빠 삼아라!".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고, 어린 제가 보인 마음 속 반응은 실제로 친구 아빠를 제 아빠로 삼고 싶을 만큼 친구의 자랑에 약이 올라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복음을 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음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바울은,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존귀하게 만드심으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시기하여 노엽도록 만드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을 약 올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하나님의 장난스러운 약 올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 안에 있는 이방인의 모습에 시기심의 마음을 품게 해서라도 그들에게 복음을 심어 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애절한 마음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도전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본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 모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공로 없고, 의로울 것이 없는 미련한 우리들을 먼저 믿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세상의 저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우리를 적용해 보니, 하나님은 먼저 믿게 된 우리를 통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시기와 노여움의 마음을 갖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성도의 모습', '하늘의 평안을 누리고 있는 삶', '고난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는 입술', '먼저 십자가를 지며 헌신하고 손해 보는 자세', 그리고 '궁극적인 하늘의 축복을 소망하며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의 삶을 누리는 모습' 등을 통하여 하나님은 세상의 저들이 우리의 삶의 여정을 제발 시기하고, 노여워 함으로 우리가 누리는 그것을 빼앗고 쟁취하려는 마음을 갖고 그렇게 해서라도 복음의 여정에 들어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을 돌아봅시다. 세상의 저들이 약이 오를 정도로 부러워서 자신들도 그것을 누리지 않고는 못 견뎌 할 만큼 우리는 성도로서의 존귀함와 축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질투심이나 부러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세상의 저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도된 우리 모두의 삶이 세상이 시기할 만한 삶이 되어서 그들로 우리의 모습이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향해 선포할 수 있는 축복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고지를 향해 오르고 올라도 마음에 참 만족과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며, 자괴감과 분노와 상처에 힘들어 하는 세상이여! 우리의 이런 축복된 신앙의 여정을 보라… 참으로 약 오르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