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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속

포기(抛棄, give up)라는 단어는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과한 욕심이나, 부적절한 행위 등은 빨리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유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고 말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포기’해야 함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혹시 악의 모양을 닮거나, 따르게 될까 항상 ‘헤아려’볼 만큼의 영적 지혜와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늘 말씀 드리는 것처럼, 악(惡, evil)은 악의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악은 선하거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위장되어 나타나, 우리로 악을 선함으로 착각하거나 오해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동성애 논란이 그렇고, 인간복제나 유전자 변이 등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인권의 문제’, 혹은 ‘삶의 질의 문제’로 포장되어,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서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어코 성취해 내고야 말겠다는 인간들의 집념은, 이제는 그것을 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악이 되는 시대로 우리를 몰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같이 되고 싶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과감히 집어 삼킨, 태초의 사람들을 보는 듯 합니다.

이제는 서양의 문화를 넘어 한국에서까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분별없이 즐기고 있는 할로윈(Halloween)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들의 축제로 시작된, 분명한 ‘악’임 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분장과 화려한 축제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캔디로 포장된 할로윈은 이제 제 세계의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즐기는 축제의 문화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히려, 이교도의 축제 할로윈을 거부해야 한다는 소수(?)의 사람들이 ‘악’처럼 되어 버리고,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하는 고리 따분한 사고의 사람들처럼 인식되고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단의 놀음이 친숙해지고, 귀신의 모양이 친숙해 지고, 세속의 문화가 친숙해지도록 만드는 사단의 계략은 너무도 아름답게 포장되어 올해에도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세속의 문화들이 훨씬 재미있고, 쾌감을 자극하는 즐거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 자녀들에게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신앙은 세속의 즐거움을 포기해 가는 여정’이라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신앙의 훈련’이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 시기입니다. 10월 31일,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들은 ‘Halloween’이 아니라, ‘Holywi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