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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계기자

‘오늘도 계기자’라는 말을 잘 읽으셔야 합니다. ‘개기자(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버티거나 반항하다)’가 아니라 ‘계기자’입니다. 기독교 포털에 올라온 단어인데, 재미있어 목양편지에 인용해 봅니다. ‘오늘도 계기자’라는 말은 ‘오늘도 계속 기도 하자’라는 말을 줄인말이라고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 트랜드를 이용한 말인 것 같습니다. 처음엔 ‘계기자’라는 말이 재미있어 웃음을 지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매우 본질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에 마음에 새겨 두고 있었습니다.

기도는 생각날 때만 혹은, 필요할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삼상12:23)’라고 말씀했고, 우리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눅21:36)’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도바울도 ‘기도를 항상 힘쓰고 깨어 있으라(골4:2)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흡을 멈출 수 없듯이,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호흡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계기자’라는 말이 예사말처럼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만큼 능력있는 자들은 없기 때문입니다(마21:22). 무엇보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기도보다 더 큰 영적무기는 없기 때문입니다(마7:7-8).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무기를 바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1월 19일부터 현재 우리가 예배 드리고 있는 코퀴틀람 예배당과 소그룹 모임 장소로 사용할 포트 코퀴틀람의 쉴만한 물가(오피스) 두 곳에서 오전 6시에 동시 새벽기도회를 진행합니다. 구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의 마음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저 역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도와 깊은 고민 가운데 있다가 결정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된 삶을 누리도록 만들고 싶은 목사의 원초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일단 목회자들이 제일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그간은 혹시 일이 있어 한 사람이 빠지더라도 다른 한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기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제 두 곳에서 새벽기도회가 진행되니 그런 장점을 활용하기 힘듭니다. 물론 특별새벽기도회나 월삭새벽기도회는 본 교회에서 함께 모여 진행하겠지만, 절대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분명히 목회자들에게도 있습니다. 부탁드리는 것은, 이 일이 목회자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나 일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스스로도 영적으로 다시 한 번 무장하도록 만드는 귀중한 시간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 성도들이 심각한(?) 부담감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특별히 포트 코퀴틀람에 계신 분들은 더 부담이 심하실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그런 부담으로라도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이라도 더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성도 본인의 축복과 영적 성장을 위한 일입니다. 또한 이 일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기회요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로, 능력이 넘치는 공동체 삼기 위한 하나님의 작업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계기는’ 2016년에 되십시다. ‘오늘도 계기는’성도는 아무도 이길 수 없습니다.